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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송곳니, 콕콕

달덩(@ekfejd1013)

 

 

이 세상에는 인간의 생피를 못 마시는 뱀파이어가 생각보다 많다. 인간과 오래 몸을 부대끼며 산 뱀파이어들이 주로 그러했는데, 예외적으로 지민은 그냥 선천적으로 생피를 마시지 못했다. 어쨌거나 지민 외에도 인간의 피를 못 마시는 많은 뱀파이어들 덕분에 짐승의 피를 조달해주는 대행 업체가 성행했다.

 

지민이 팩을 뜯어 피를 냄비에 쏟아냈다. 오래 된 피를 조달한 건지 뭉친 핏멍울들이 팩 입구에 걸려 울컥울컥 떨어져 나왔다. 조만간 이 업체도 바꿔야겠네. 한숨이 나왔다.

 

짐승의 피도 생으로는 마시지 못하기에 가스불을 켜고 끓여마셔야 했다. 비린내가 어느정도 날아간 뜨뜻 미지근한 피가 지민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안 마시는 것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갈증이 났다. 뱀파이어가 인간 피 많이 못 마시면 반죽음 상태에 놓인다던데, 얼마나 더 굶어야 그렇게 될까.

 

집 밖이 떠들썩했다. 지민은 커튼을 쳐 창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거리에 귀신이나 늑대인간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순간 고향으로 돌아온 것일까 생각을 했다가 오늘이 할로윈 데이임을 깨달았다. 금방 흥미를 잃고 커튼을 치려다 뱀파이어 코스튬을 한 사람들을 발견했다. 지민은 어쩌면 오늘은 외출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인적 드문 곳에서 사람들의 목덜미를 넘보기를 한 시간째, 지민은 별 소득 없이 폐정류장에 앉았다. 간만에 외출을 했더니 체력이 부족한 탓이었다. 그냥 들어가야지 생각하던 찰나, 지민의 앞으로 교복을 입은 남자 무리가 섰다.

 

“여기는 버스 안 오나?”

 

순식간에 떠들적해져서 지민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그러다 무리 중에 뱀파이어 분장을 한 정구을 발견했다. 입가에 피칠을 하고, 제법 창백하게 얼굴을 덮었지만 생생한 혈기는 숨길 수 없는 영락없는 인간 말이다. 애송이, 지민은 속으로 빈정댔다. 뱀파이어가 뭐가 좋다고 분장씩이나 한담.

 

정국 또한 지민을 빤히 쳐다봤다. 노골적이고, 초면의 남자에게 보내기에는 다소 센슈얼한 시선이었다. 지민은 화들짝 놀라 눈동자를 굴렸다. 그때 정국이 시선을 고정시키고 옆의 친구의 목덜미를 무는 시늉을 했다. 지민을 희롱하는 모양이었다. 지민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무리가 떠났다. 그런데 어쩐지 정국은 가지 않고 지민의 옆에 눌러앉았다.

 

“얼굴에 뭐 바른 거예요? 하얗다 못해 창백하네.”

“... ...”

 

지민은 당장이라도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어쩐지 갈증이 더 심해져 일어날 힘이 없었다.

 

“그쪽도 뱀파이어 분장 한 거예요?”

“지랄은.”

 

정국이 웃었다. 그러더니 한참 조용하게 지민을 보고만 있었다. 지민이 슬쩍 정국에게로 고개를 도니 정국이 덥썩 지민의 목을 물었다. 지민이 기겁을 하며 부르르 떨었다.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처음엔 이를 세우고 물더니, 이내 입술만 진득하게 붙이고 있는 게 꼭 뱀파이어가 아니라 젖을 빠는 애기 돼지 같았다. 안 그래도 기가 바닥까지 친 상태에서 자극을 받으니 지민은 결국 이성을 놓았다. 정국을 떼어놓고 역으로 목덜미를 물었다.

 

정국의 목에 송곳니를 꽂아넣고 피를 쪽쪽 빨아댔다. 정국은 놀라기도 잠시, 물기 편하게 자리를 잡아준 뒤 주변을 살폈다. 한참이나 피를 마신 지민이 풀린 눈으로 숨을 쌕쌕댔다.

 

“여기 생각보다 보는 눈 많아요, 혹시 집 가까워요?”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현관 앞이었다. 이제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여전히 목이 바싹바싹 마르고 있어서 지민은 미친 척하고 문을 열었다.

 

“와, 집 좋네요.”

 

지민보다 먼저 발을 들인 정국이 집을 둘러보다가 쇼파에 앉았다. 그리고 옆자리를 탁탁 쳤다. 와서 목을 물라는 신호였다. 지민은 기가 찼지만 쭈뼛대며 다가가 정국의 목을 물었다. 정국이 지민을 저의 무릎에 앉히고 허리를 감쌌다. 이래도 되는 걸까, 몰라. 그냥 마시고 죽자. 얘도 죽이고 나도 죽지 뭐.

 

한 시간 내내 피를 빨리고 난 뒤 휘청이는 정국을 저의 침대에 눕힌 지민은 뒤늦게 자괴감에 빠졌다. 태어나서 처음 인간의 피를 마셨는데 생각보다 거부감이 없어서 충격적이었다. 사실 거부감은 커녕 황홀할 지경이었으니 말 다 했다. 사실 자신이 인간의 피를 마실 수 있는 거였나. 냉장고에서 예전에 업체에서 덤으로 받은 인간의 피를 꺼냈다. 혹시 몰라서 조금 마셨다가 곧바로 구역질을 하고 게워냈다. 진짜 기이한 일이었다.

 

정국은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요동도 없이 잤다. 이불이라도 덮어줄 요량으로 방에 들어간 지민은 정국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옆에 걸터앉았다. 아까는 경황이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잘생긴 것 같기도. 돌연 지민이 코를 킁킁댔다. 아까 맡았던 달큰한 내가 훅 올라왔다. 저도 모르게 정국의 손목을 캉 물었다. 물컹한 살에 입술을 붙이고 그대로 흡입하자 피가 잇새로 들어왔다.

 

“... 뭐해요”

“... 깨써? 요?”

“간지러워서 웬 모기가 물고있나 했네.”

 

지민 쪽으로 돌아누운 정국이 지민의 윗입술을 드러내 송곳니를 만졌다. 안 그래도 다른 뱀파이어들보다 뭉툭하고 작은 송곳니가 콤플렉스였던 지민은 금세 빈정이 상해 정국의 손을 내쳤다.

 

“모기? 허, 그 입술에 피딱지 분장이나 지우고 말해. 되도 않게 뱀파이어 분장이나 하고는 말야.”

 

실없이 웃던 정국이 기지개를 켰다.

 

“안 궁금해요? 그쪽이 내 목 물었는데 안 놀라서” “... 뭔데”

“내 아빠가 늑대인간이거든요.”

 

그 말에 지민이 작게 경기를 일으키고 뒤로 물러났다. 지민은 오래전 보름달이 뜨던 날 늑대인간에게 물려 죽을 뻔 한 기억이 있었다. 말이 죽을 뻔 한 거지, 뱀파이어는 죽지도 못하기 때문에 늑대인간에게 물리면 그 영겁의 고통을 선연하게 느껴야 할 터였다. 그 뒤로는 늑대인간이라면 학을 뗐는데 이렇게 만날 줄이야. 지민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정국이 걱정 말라는 듯 양손을 들었다.

 

“걱정 마요. 나는 인간이니까. 그 분은 저랑 피 한 방울도 안 섞인 양아버지니까요.”

 

그 말에 지민이 뒷걸음질을 멈췄다. 정국은 저의 입가에 피딱지를 가리키며 오늘 양아버지에게 맞은 상처라고 했다.

 

“원래 보름달 뜨는 날에는 같이 있으면 안 되는데, 오늘 제 생일이었거든요. 욕심 부리다가 호되게 혼났네.”

 

분장인 줄 알았는데, 괜히 미안해진 지민이 연고를 찾으러 집안을 뽈뽈 돌아다녔다.

 

정국의 입가에 연고를 바르고 나니 자신이 깨문 자국이 보였다. 목덜미에 두 개, 손목에 하나. 마치 모기가 문 것처럼 미세하게 작은 빨간 구멍이었다. 이게 내 송곳니 크기구나. 생경한 느낌이 들어 지민이 그 자국들을 훑었다. 그러자 정국이 흠칫 떨었다.

 

“뭐야, 변태예요? 남의 목을 왜 훑어.”

“모? 변태?”

 

 

 

 

“너 어디 가지 말구 기다리고 있어.”

 

오늘이 진짜 뭔 날이긴 한가보다. 평소 진짜 급한 일 아니면 밖에 일절 나가지 않던 지민이 오늘은 외출을 두 번이나 한다. 침대에 누워있는 정국에게 기다리라고 몇 번이나 말한 뒤에도 미심쩍어 현관에서 소리를 지르니 정국이 걱정 말라며 손을 휘저었다. 그걸 확인하나 지민이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지민이 급히 뛰어온 곳은 케잌 가게였다. 생면부지의 생일을 챙기려니 이상했지만 피를 얻어먹은 대가라고 치지 뭐. 지민은 진열장에 코를 박고 케잌들을 보다가 생과일이 듬뿍 올려진 놈을 골랐다. 달큰해보이는 게, 왠지 정국이 생각났다.

 

지민은 케잌상자를 가방 들듯이 아무렇게나 들고 뛰었다. 평생 케잌을 안 들어봐서 조심스럽게 들어야 된다는 경각심도 없었다. 결국 상자면에 이리저리 부딪혀서 뭉개진 케잌을 들고 집에 들어섰다.

 

“... 자나?”

 

조심히 방문을 열자 침대 위에는 푹 꺼진 이불만 있었다.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면서 지민은 케잌을 식탁에 놓고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원래 없었던 양 깔끔하게 사라져버렸다.

 

 

 

다음날부터 이갈이를 하는 아기처럼 치아가 간지러웠다. 특히 송곳니, 지민은 무의식적으로 손에 잡히는 걸 깨물다가 결국 저의 손목을 물었다. 말랑하지만 차가웠다. 투투, 이게 아냐. 지민은 계속 양치질을 하며 칫솔로 송곳니를 긁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자 이번엔 미친 듯한 갈증이 났다. 목이 타는 듯한 고통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모든 팩을 뜯어서 마셨다. 그냥저냥 먹을만은 하던 피들이 이젠 역하기 그지 없었다. 결국 모든 걸 게워낸 지민은 탈진한 듯 화장실 바닥에 쓰러졌다.

 

며칠 동안 화장실에서 눈만 뜨고, 감고 살았다. 아무것도 안 먹고 이러다 기절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눈을 번쩍 뜬 지민이 호다닥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 오늘은 빨리 열어주시네요?”

 

피를 조달하러 온 대행업체 직원이었다. 지민은 눈에 띄게 실망하며 혈액팩 박스를 받았다.

 

“이번 피는 토끼와 사슴입니다. 요즘 구하기가 힘들어서 사냥꾼들이 애 좀 먹고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단가를 좀...”

 

“됐구요. 혹시 늑대인간 알아요?”

“늑대인간이요..?”

“아오, 그 파렴치한 새끼들. 휴.. 그래서 얼마라구요.”

 

얼만지 물어봐놓고선 대답도 안 듣고 지민은 지갑에 있는 모든 현금을 직원의 손에 쥐어주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때 문이 쿵쿵 울렸다. 직원이 또 할 말이 있는가보다.

 

“아, 왜요오! 돈이 부족해?!”

“돈?”

 

짜증을 내며 확 문을 연 지민이 정국의 악력에 딸려나왔다. 지민은 멍하니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무려 보름만의 재회였다.

 

“무슨 돈이요?”

“이이...”

 

지민이 울음을 터트렸다. 되려 당황한 정국이 지민을 안고 얼렀다. 꺼지라며 가슴팍을 밀어내는 걸 겨우 달래서 집안에 들어왔더니 진정한 지민이 훌쩍이다가 정국의 팔을 물었다.

 

“뭐야, 튕기더니 갑자기 물어요?”

“가만히 있어어...”

 

피를 마시려는 목적보다는, 그냥 무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어느새 정국의 팔에 지민의 자국이 가득했다. 질리도록 물다가 입을 뗀 지민이 정국을 노려보다가 냉장고에서 케잌을 꺼내왔다.

 

“쳐먹어.”

“오.. 케잌?”

“그래, 그냥 있어서 주는 거.”

 

정국이 난감하다는 듯 케잌을 보고만 있자 지민은 괜한 짓을 했나 또 지레 겁을 먹었다.

 

“그, 저번에 말도 없이 간 건 말이에요. 아빠 때문이었어요, 보름날 밤이 지나서 인간으로 돌아오셨을 때 혼자 있으면 많이 괴로워하시거든요.”

“... ...”

지민은 말 없이 케잌을 잘라 정국의 앞에 뒀다. 지민의 표정을 살피던 정국은 그제서야 한 입 떠먹었다.

 

“맛있지.”

“그렇네요.”

“내가 고른 거야.”

“근데 파렴치한 늑대 자식 놈한테 이런 거 줘도 돼요?”

“...!”

 

지민이 얼굴을 붉혔다. 들었으면서 왜 모른척해. 지민이 거실로 도망가려 하자 정국이 놓칠새라 지민을 끌어안았다.

 

“... 나 인간 피는 사실 처음 마셔보는 거야.”

“저도 뱀파이어한테 물리는 건 처음이라서요.”

 

두 사람은 서로가 생경했다. 모든 게 처음이고 서툴렀다. 이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는 몰라도 그 끝이 어떻든 시작해보고 싶었다. 정국이 지민의 입술을 먼저 물었고 지민은 정국의 목에 손을 둘렀다. 다소 모기와 급혈자 같던 관계로 시작한 두 사람이 보름만에 키스를 했다. 다음 보름에는 어떻게 될까. 일단 그런 걱정은 접어둔 채 두 사람은 서로를 미치도록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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