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년에 단 한 번 세상의 요괴들만이 눈을 뜨는 날이 있다.
10월 31일의 늦은 밤 인간이 아닌 요괴들만 눈을 떠 할로윈 밤의 축제를 즐긴다.
"늦겠다. 늦겠어."
"아직 10시야."
"뭐어!? 10시? 조금밖에 못 놀잖아! 빨리 준비해!"
"나 말고 너만 준비하면 될 거 같은데."
"넌 준비 다 한 거야? 확실해?"
지혁이 정국의 몸을 위아래로 살폈다. 평범한 후드티에 평범한 츄리닝 바지. 지혁이 질색하며 정국의 어깨를 잡고 거울 앞으로 가 그의 몸을 쓸어내리자 정국이 뭐 하는 거냐며 인상을 썼다.
"참도 준비를 다 하셨네요?"
"뭐 이 정도면..."
"아! 뭐 어디 등산하러 가냐고! 옷이 이게 뭐야!"
"내 마음이지."
"그런 거 없어 빨리 옷 갈아입어. 좋은 말로 할 때."
"안 갈아입으면?"
"이렇게 해주지."
두 손가락을 맞댄 지혁이 딱! 하고 소리를 냈다. 지혁이 두 손가락을 맞댈 때부터 인상을 더 짙게 쓰던 정국이 도망가려고 다리를 움직이려는 순간 2층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홀로 거울 앞에 서 있는 지혁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정국은 2층 침실에 누워 발을 뻥뻥 차댔다. 5년 전과 비슷한 파티룩을 입은 정국이 지긋지긋 하다는 한숨을 쉬었다. 지혁이 천천히 2층으로 올라와 머리를 헝클이고 있는 정국을 말렸다.
"몇 년 만에 가는 파틴데 멋지게 차려입고 가야지!"
"겨우 100년이야!"
"100년씩이나 안 갔다고!"
"...너를 누가 말리냐."
"아무도 못 말리지. 그 짱구보다도 말썽꾸러기인 게 나야."
이상하게 정국은 해마다 가던 축제를 100년 전부터 안 가기 시작했다. 지혁은 항상 같이 가자고 그를 꼬드겼지만, 정국은 완고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성공한 지혁이 그를 100년 전과 똑같은 상황으로 옷을 갈아입혔다. 정국은 지혁이 마법을 부리기 전에 2층으로 도망가려 했지만, 정국의 발보다 지혁의 마법이 더 빨랐다. 지혁은 웃으며 헝클어져 있는 정국의 머리를 다듬었다. 정국은 투정을 부리면서도 다른 반항은 하지 않았고 지혁은 여전히 만족스러운 미소로 옷에 어울리는 머리를 세팅 해냈다.
"이제는 말 해 줄 때가 되지 않았냐?"
"뭐가?"
"100년 전에 혼자 사라졌을 때 무슨일이 있었는지."
"...비밀이야."
"너 나한테도 비밀이면 얼마나 입이 간지러우려고 그래?"
"..."
정국은 아무런 말도 못한 채 자신의 앞에 있던 지혁을 밀치고 거울 앞으로 가 앞머리를 괜히 만져댔다.
'trick-or-treating!'
100년전 정국이 파티에서 잠시 빠져나와 쉬고 있을 때 들은 말이다. 그것도 인간아이에게. 그때만 생각 하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하다.
'너 누구야 왜 여기 있어?'
정국은 목소리와 몸을 동시에 낮추고 주위를 살피며 밀집 모자를 쓰고 조금 서투르게 호박으로 만든 가방을 메고 있는 앳된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더 활짝 웃으며 전 보다 더 크게 외쳤다.
'trick-or-treating!!'
'목소리 좀 낮춰! 여기 있는 놈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야.'
'왜요?'
'원래 자기들만의 언어였는데 인간들이 뺏어갔다나 뭐라나.'
'인간들이 나빴네요.'
'그래 그러니까 인간인 너가 여기 있으면 안 돼. 모두 너를... 아니다 너 집이 어디야.'
'저를 뭐요?'
그 때 정국은 자신이 뱀파이어여서 어머니를 잃은 후로 살생을 안 하는 뱀파이어 였기 마련이지 그런 짓을 벌이는 뱀파이어 였다면 이 아이를 어떻게 했을 지도 모르고 자신이 아닌 다른 놈들이 이 아이를 먼저 발견했다면 어떤일이 벌어 졌을지 상상하니 너무 끔찍했다. 하지만 이 어린 아이는 무엇도 모르는 맑은 미소로 자신의 몸 만한 호박 가방을 정국에게 내밀었다.
'너 이름이 뭐야?'
'지민이에요! 박지민!'
'그래 지민아.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돼. 집이 어디니 내가 데려다 줄게.'
'저희 집이요? 저어기 블럭 넘고 넘고 넘어서 한 참 떨어진 곳에 빨간 벽돌집이에요.'
'그렇게 먼 곳에서 여기 까진 왜 온 거야.'
한숨 섞인 정국의 말에 지민은 울상인 표정으로 호박 가방을 흔들었다. 그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몇블럭을 지나 올 동안 이 귀여운 아이에게 초콜릿하나 안 준 인간들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지민이 안쓰러웠다. 정국은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가 사탕과 초콜릿을 잔뜩 들고 나와 지민의 호박 가방을 가득 채워줬다.
'우와! 아저씨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예요!? 순간이동!'
'내가 달리기가 좀 빨라.'
'아무리 그래두...'
'자 그래도 이제 됐지? 집에 가자.'
지민은 자연스럽게 팔을 벌렸고 정국은 가뿐하게 지민을 들어올리고 호박 가방을 손에 꼬옥 쥐었다. 그리고 달렸다. 순식간에 지민의 집 앞에 도착해 그를 내려줬다. 지민은 조금 겁먹은 얼굴로 정국의 어깨에서 내려왔다.
'감, 감사합니다.'
'그래 잘가고 다시는 오늘 같은 날 저기 가지마. 위험해.'
'네...'
'안녕.'
'아저씨!'
'어?'
지민이 정국의 옷깃을 붙잡고 꼼지락 댔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정국이 준 초콜릿 중에 하나를 정국에게 내밀며 지민이 물었다. 정국이 웃으며 지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국이야 전정국. 만나서 반가웠어.'
정국은 지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초콜릿을 받았다.
그리고 그 초콜릿은 100년이 지나도록 정국의 방 거울 옆에 놓여져 있다. 바로 지금 앞머리를 만지며 보고 있는 거울 밑에 예쁘게 포장 되어 놓여져 있다.
"근데 너 저 초콜릿 100년 된 거 아니냐? 썩었겠다."
"그렇겠지."
"근데 왜 안 버려."
"그걸 왜 버려."
썩었으니까... 하고 말하려던 지혁이 정국의 날카로운 눈을 보고 입을 앙 다물었다. 말을 한마디라도 더 했으면 조금 위험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조금 어색하게 나란히 축제로 향했다. 축제는 100년 전 보다 화려했다.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모두가 춤을 추며 피를 마시거나 생고기를 먹거나 달달한 초콜릿이나 캔디를 먹고 있었다.
축제의 분위기에 맞춰 정국도 점점 몸을 살짝 살짝 흔들었다. 100년씩이나 빠지기엔 아까운 축제였다. 정국은 지난 날들을 조금 후회하며 피를 마셨다. 여기 저기서 마법이 터지며 번쩍거리며 불이 났다. 물이 쏜살같이 쏟아지고 불빛이 번쩍거리고 박쥐들이 날라다녔다.
약이 섞인 피를 너무 마니 마신 정국은 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100년 전 그 자리에.
"안녕하세요."
"? 누구세요? 저를 아세요?"
"...trick-or-treating."
정국은 눈을 크게 떴다. 100년 전 같은 장소에서 들었던 그 말. 말하는 상대의 나이나 외관이 달라졌지만 그때 느껴지던 느낌은 똑같았다.
"지민...?"
"기억력이 꽤 좋으시네요."
"너... 어떻게..."
"아저씨 기다리다가 아저씨랑 똑같은 처지가 됐어요."
그렇다, 지민은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10월 31일에 이곳에서 정국을 기다렸다. 그러다 19살에 다른 뱀파이어에게 들켜 목덜미가 물렸고 같은 뱀파이어가 되고 말았다. 지민은 그 순간이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국은 지난 100년 동안 단 한 번도 이곳에 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자신의 말을 듣고 괴로워하는 정국을 보고 지민은 곤란해 했다.
"아저씨 괴로워 하라고 한 말은 아닌데..."
"미안해 이렇게 만들어서."
"..."
"오지말지. 나를 그냥 잊어버리지."
"그럴 수가 없었어요."
"왜?"
"아저씨가 자꾸 생각 났는 걸요."
지민은 정국의 손을 잡으며 몸을 붙여왔다. 지민의 가쁜 숨이 정국에게 너무 가까웠다.
"야 전정국!"
그 때 지혁이 정국을 찾아와 두 사람은 급히 떨어졌다. 죄 지은 사람 처럼 두 사람은 급히 떨어지며 부끄러워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지혁은 의아해 하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지혁은 지민의 냄새를 맡으며 누구인지 확인했다. 혈의 제취가 느껴지지 않자 뱀파이어로 알아내고 악수를 청했다. 지민이 그 손을 잡으니 숨을 가빠했다.
"사이코메트리?"
"헉, 헉, 비슷해요."
"비슷한 정도가 아닌데. 내가 500년 넘게 살았거든 이렇게만 힘들어 하는 게 놀라워."
"너 몇살이야?"
"백..."
"애기네."
지혁에게 애기 소리를 들은 지민은 조금 기분 상해했다. 정국은 지민의 능력을 듣고 놀라 지민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지민은 뱀파이어가 됨과 동시에 사이코메트리라는 능력을 얻었다. 사이코메트리란 만지거나, 보거나, 듣고 그것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다. 사이코메트리는 감정을 먼저 느끼고 그에 따라 이미지가 떠오른다. 지민이 기억을 읽어내고 힘들어 하거나 숨 가빠 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네가 사이코메트리라고?"
"...그렇데요."
"..."
"걱정마세요! 무슨 생각 하고 계신지는 안 읽었,"
"혹시 내 어머니. 봤어?"
"아, 어머니 같은 분은 봤던 거 같아요."
"내 마지막 기억은 아마 큰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이었어."
"아, 그럼, 네, 봤어요."
"전정국 너."
"아무말 하지 말아봐."
정국의 표정은 진지했다. 갑자기 진지해진 분위기에 지민은 의아해 했다.
"얼굴. 그릴 수 있어?"
"...네... 그... 한 번만 더 볼 수 있을까요?"
"자."
정국은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정국은 거의 울 지경이었다. 지민은 정국의 손을 잡자마자 괴로워하며 목을 쥐어 짰다. 급하게 손을 놓고 지민의 주머니에 삐져 나와 있던 장갑을 손에 끼웠다.
"헉, 제가, 더 어릴땐, 화가 였어요, 잘, 그릴 수 있어요."
"...고마워."
정국은 갑자기 지민을 혹사 시키는 거 같아 미안해 했다. 세 사람은 축제속으로 들어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펜을 잡은 지민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들리는 음악소리에 맞춰 발을 까딱거리던 지민이 몇 십분 만에 정국에게 그림을 내밀었다. 정국은 그림을 받아 들고 울기 시작했다. 그림을 꼭 끌어 안고 우는 정국의 어깨를 감싸 안았던 지민이 그를 품 속으로 끌어 당겼다.
"울지 말아요."
"고마워 정말 고마워."
"아저씨가 울라고 그림을 그린게 아니에요."
뱀파이어가 되기 전의 정국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아이로 살고 있었다. 그러다 나라가 흉년이 들고 먹을 것이 없어졌다. 그 때문에 정국의 아버지가 병들어 죽고 정국의 어머니와 정국만이 살아 남아 단 둘이서 살림을 해먹고 살았다. 정국이 야채를 캐러 뒷 산으로 올라갔을 때, 그 때. 뱀파이어가 됐다. 영생의 뱀파이어, 동물의 피를 먹고 사는 그 뱀파이어. 정국의 어머니는 정국이 뱀파이어가 되고나서 정국이 필사적으로 자신의 팔을 깨물며 숨긴 덕에 조금은 같이 살았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해 사람을 잡아먹는 정국을 보고 정국의 어머니는 짐을 싸 잠든 정국을 두고 도망갔다. 하지만 사실 정국은 잠들지 않았었고 어머니가 도망가는 뒷 모습만 엉엉 울며 바라봤다. 울음 소리에 잠시 뒤돌아 본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을 기억에서 지웠다고 생각 했는데 그 한 켠에 남아 있었나보다.
지민은 그런 정국의 품에서 그림을 뺏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지혁은 그런 둘을 보고 술을 마시며 웃었다.
정국은 여전히 울고 있었고 지민은 그런 정국을 귀엽게 보고 있었다.
"왜 자꾸 울어요. 그만 울고 웃어요."
"그러기 힘들다는 거 너도 대충 짐작 가지 않아?"
"자 봐요."
지민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우스꽝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울던 정국이 웃으며 지민을 바라봤다. 그리고 지민의 장갑 낀 손을 잡고 그 춤을 따라 추었다. 정국이 자신의 춤을 따라추자 지민은 손을 고쳐잡고 분위기가 전환 되어 흘러나오는 블루스 음악에 몸을 흔들었다. 정국은 자연스럽게 지민의 흉통을 끌어안고 지민과 눈을 맞췄다.
"내가 능력 안 쓰고 아저씨 생각 읽어볼까요."
"해 봐 어디."
"내 앞에서 춤추고 있는 박지민이랑 키스 하고 싶다."
"그에 대한 대답은."
"맞다면 오케이고 아니라면 아쉽겠죠."
지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국은 지민과 혀를 섞었다. 저 멀리서 폭죽이 터졌고 여기저기서는 건배를 올렸다. 그리고 정국과 지민은 그 한 가운데에서 키스하고 있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거나 하늘에 쏘아 올리는 불꽃으로 격렬히 축하해 주는 곳. 할로윈 밤의 축제. 그 곳에서 키스하는 두 사람은 영생동안 함께 할 것이다. 눈물과 불꽃으로 기억 되리.
